이순신 대신 범이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현수막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도 제게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재제하자 범이 내려온다

지난 17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에 '범 내려온다' 현수막이 새로 걸렸습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9일 도쿄올림픽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선수단을 향해 "호랑이 같은 용맹한 기상과 기백으로 어느 때보다 크고 많은 승전보를 기대한다"고 격려했습니다.

김 총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 선수단 숙소에 새로 걸린 '범 내려온다' 현수막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김 총리는 우선 "코로나19로 올림픽이 연기되는 전대미문의 상황과 외교적 문제까지 더해져 아마 우리 선수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면서 "총리로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총리는 "5년간 올림픽만을 바라보고 진력으로 달려온 선수들에게 이번 올림픽이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면서 "정부는 선수들이 흘린 땀과 노력이 활짝 꽃피울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체육회가 모든 올림픽 경기장 내에서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약속을 받은 뒤 이날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내걸었던 일명 '이순신 장군' 현수막을 뗐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3일 공식 개장한 일본 도쿄 주오구 도쿄올림픽 선수촌 내 한국 선수단 거주층에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도 제게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에서 따온 내용입니다. 온 국민의 응원을 등에 업고 결연한 각오로 도쿄올림픽에 임하겠다는 메시지로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일본 언론과 극우정당에서 이를 두고 '반일의 상징'을 앞세운 것으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일본 극우정당인 일본국민당 관계자들은 16일 낮 일본 됴코 주오구 하루미 지역에 있는 올림픽 선수촌의 한국 선수단 숙소동 앞에서 욱일기를 들고 확성기로 "한국의 어리석은 반일 공작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한국 선수단 퇴출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대학체육회가 숙소 외벽에 태극기와 함게 내건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문구를 문제 삼고 이같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일본 측의 압력에 IOC가 움직였습니다. 대한 체육회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IOC 관계자가 전날 대한민국 선수단 사무실을 방문해 현수막 철거를 요청했고, 서신으로도 '현수막에 인용된 문구는 전투에 참여하는 장군을 연상할 수 있기에 IOC 헌장 50조 위반으로 철거해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다고 합니다. 올림픽 헌장 50조는 경기장 등 어떤 장소에서건 올림픽 기간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을 불허한다고 명시했습니다.

IOC의 요청에 대한체육회는 "코로나 시기 선수들 뒤에 국민들이 있다는 뜻을 담은 메시지로, 정치적 메시지는 없었다"고 설명한 후, 경기장 내 욱일기 응원에 대해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고 밝혔습니다. 체육회 측에 따르면 IOC는 모든 올림픽 경기장 내 욱일기 사용에도 올림픽 헌장 50조를 적용하기로 약속했고,'이순신 장군' 현수막도 내리기로 상호 합의했습니다.

체육회 측은 이순신 장군 현수막을 대신해 한국 선수단 숙소층에 '범 내려온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범 내려온다'는 한국 관광공사가 제작한 대한민국 홍보영상에 등장하는 곡 이름입니다.

범은 호랑이를 뜻하며 용맹, 권세, 대한민국의 상징입니다. 내용을 보면 이순신 장군 못지 않게 적들의 오금을 저리게 합니다.

“범 내려옵니다. 범이 내려옵니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옵니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중략)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하늘이 무너지고.

홍앵앵앵 허는 소리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라가 깜짝 놀래,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졌을 제. 범 내려옵니다. 범이 내려옵니다.” 일본측이 이번엔 목을 움치고(쏙 집어넣고) 가만히 엎질(엎드릴) 지 주목됩니다.

범 내려온다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처음 그린 사람은 육당 최남선입니다. 육당은 1908년 잡지 '소년' 창간호에 삽화로 한반도 호랑이 지도를 그렸습니다.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토끼 모양으로 한반도 지도를 그린 뒤 "반도가 토끼를 닮아서 조선인들이 겁이 많고 수동적"이라고 말하자 육당은 호랑이 지도를 통해 "한반도에는 범과 같은 진취적인 기상이 넘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육당의 생각을 이어받아 만주 땅을 향해 앞발을 치켜들고 포효하는 범의 형상으로 한반도 지도를 그린 것이 바로 '근역강산 맹호기상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기간 일본을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9일 밝혔습니다.

박 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한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 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있는 협의를 나눴다"며 "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지만,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수석은 "그 밖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결정한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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